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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리뷰] 제1차 대전의 참혹함 고발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7월 7일까지 열리는 ‘상상의 전선: 제1차 세계 대전과 글로벌 미디어’는 미디어와 전쟁을 조합한 최초의 기획전이다.     최초의 글로벌 미디어 전쟁이기도 했던 1차 세계대전은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 영화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기획전 ‘상상의 전선’은 참혹한 전장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전시 분위기까지도 세밀하게 전시공간으로 옮겨온 ‘전쟁의 축소판’이다.   한 세기 전, 테러를 빌미로 시작한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으로 기록된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허명에 수많은 생명들이 총알받이로 죽어간 전쟁이었다. 전방의 군인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전쟁 관련국들의 시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쟁에 참여했다.     1차 대전의 전쟁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정보와 미디어였다. 목숨을 각오하고 군대를 따라 다녔던 종군 기자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전쟁터의 현장성을 보도했다. 자신의 국가를 응원하는 예술가들은 각자의 작업실에서 전장을 상상하며 전쟁의 참혹상을 표현했다.     그들은 회화, 포스터, 삽화, 판화,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들을 폭넓게 사용했다. 전쟁을 주제로 한 포스터와 삽화들을 연일 접하면서 민간인들의 심리 속에는 포탄 자국과 전사자들의 유골 이미지가 완연하게 자리 잡았다.   윌리 재캘의 석판화 시리즈 ‘Memento 1914/15’는 옆으로 잘린 머리를 그린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그가 빌헬름 2세의 예술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기 위해 베를린 분리파에 가담했던 1915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독일의 위대한 화가 오토 딕스는 스스로 군에 입대, 병사로서 직접 체험한 전쟁을 합성된 이미지들로 표현해냈다. 엑스레이처럼 뒤죽박죽된 두개골과 멍한 눈, 입을 벌리고 있는 유령,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얼굴 등 적나라하고 강렬한 그의 그림들은 자기 내면의 공포와 불안, 살기가 서려 있는 자화상들이다.   전시회는 전장의 탱크와 비행기 공격, 쥐와 이가 들끓는 참호, 포탄에 맞아 사지가 잘리고 찢어지고 으깨진 병사들의 참상 등 저절로 고개를 돌려 피하게 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2차 대전 기간 저널리스트의 통절한 기고와 미디어 아트(매체 예술)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공포를 조장하는 가상의 엔진으로 작동됐다. 공포는 전이되기 마련이다. 정치가나 문인들의 여론전만큼이나 미디어에 의한 정보전도 민중들의 심리를 전쟁 열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참혹함 대전 전쟁 분위기 세계 대전 대전 기간

2024-01-21

[전시회 리뷰] 소파 앉아 세계 미술 컬렉션 감상…가상 박물관 투어

집에서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전 세계 유명 박물관의 전시회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가상 박물관 투어는 비디오와 이미지의 조합을 사용해 박물관의 물리적 공간을 시뮬레이션함을 말한다. 즉, 방문자는 휴대폰이나 데스크톱으로 어디에서나 세계의 유명 박물관 컬렉션을 탐색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상 투어를 제공하는 세계의 유명 박물관 몇 곳을 방문해 본다.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1759년에 개관, 세계 최초로 대중에게 입장을 허용한 영국의 국립박물관이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럽 등지에서 수집된 인류의 역사적, 문화적 유물들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버추얼 투어를 구성하는 그래픽과 음악도 수준급이다. 2015년부터 구글 아트 앤 컬쳐와 콜라보로 가상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뉴욕의 자랑거리다. 이 기이한 건물의 나선형 테마 인테리어를 둘러보기 위해 매일 수천 명이 방문한다. 포스트모던 미술, 컨셉트 아트, 설치 미술 작품을 감상한 후 홈페이지로 이동, 구겐하임의 방대한 컬렉션을 살펴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808년 설립됐고 소장품 수는 3000여점에 지나지 않지만,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반 고흐의 ‘자화상’, 렘브란트의 ‘야경’, 페르메이르의 ‘편지 읽는 여인’ 등 수준은 세계적이다. 가이드와 대화하며 작품들을 감상하는 느낌을 주는 가상투어도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은 반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건축가 빅토 라루가 기차역을 개조하여 디자인한 웅대한 미술관 건물을 감상할 수 있다. 드가의 '발레리나', 밀레의 '만종', 모네의 '카미유', 고호의 '방'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 바로 오르세 미술관이다.     자선 사업가 엘리 브로드가 자신의 컬렉션 2000점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시작된 LA 더 브로드(The Broad)는 작품 보호를 위해 1억 4000만 달러를 들여 디자인된 미래에서 온 듯한 모양의 외관부터 매력적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 '무한 거울의 방'을 비롯한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바스키아, 바바라 크루거와 같은 현대미술의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울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이래 경기도 과천관, 삼청로의 서울관, 수장 및 보존에 특화해 개관한 청주관 등이 차례로 개관 현재 4곳이 운영되고 있다. 2026년 대전관 개관 예정. 건축 및 디자인 등 방대하고 다양한 한국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구글의 가상 공간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은 르네상스 미술의 보물상자다. 디지털 아카이브에 담겨 있는 모든 작품을 스크롤 할 수 있다.     천사, 신의 계시 등을 주제로 한 보티첼리, 카날레토 등의 대형 벽화와 그림들이 있는 미술관이다. 360도 가상 투어를 통해 부온탈렌티 그로티가 설계한 보볼리 정원의 건축물들을 둘러보며 '디지털 산책'의 새로운 경험을 해보시길.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컬렉션 박물관 가상 박물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2023-12-17

[전시회 리뷰] 5억 예술애호가 대상 온라인 갤러리

온라인 시대, 특히 팬데믹 이후 미술품 전시는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버추얼 갤러리 형태로 대체되는 추세다.     갤러리나 뮤지엄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모바일 폰이나 컴퓨터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음을 뜻한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력으로 온라인 공간을 창조하고 재구성하여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들을 위해 제작된 온라인 갤러리들은 전 세계 5억 이상의 예술 애호가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온라인 아트 플랫폼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유명 화가들의 걸작들을 홍보하고 또한 판매하며 수익을 올린다.     물론 온라인 갤러리는 직접 실물을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전시회는 전통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의미 외에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친목을 쌓아온 소통의 공간이다. 오프라인 전시회에서 이루어지는 스킨십을 온라인이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팬이라면 이들 온라인 갤러리들을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하다. 대표적 온라인 아트갤러리 플랫폼 몇 곳을 소개한다.     사치 아트(Saatchi Art)는 전문성과 영역의 광범위함에서 단연 이 분야의 탑이다. 100여개 이상 국가들의 예술가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매달 수백만 페이지 조회 수를 자랑하며 국제 규모의 쇼와 전시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심사 과정을 거쳐 가입된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백만 명의 팔로워에게 홍보되며, 거래 고객과 미술 수집가들에게 작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웹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모든 작품에 대한 35%의 비용도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 비해 낮은 편이다.   프랑스 몽펠리에 시에 본사를 둔 아트마주르(Artmajeur)는 아마추어와 전문 예술가 모두를 구매자와 직접 연결하는 디지털 마켓플레이스이다. 매달 500만 페이지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이 갤러리는 전 세계의 수집가와 예술 애호가들의 소장품들을 전시한다. 아티스트들은 무료 계정을 오픈한 후 자신의 도메인 이름이 있는 웹사이트에 10개까지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다. 판매가 이루어지면 수수료가 청구된다. 디지털 파일로 판매되는 경우 판매자는 70%의 로열티를 가져간다.     아이디엘 아트(IdeelArt)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갤러리로 2015년부터 엄선된 현대 추상주의 작품들을 주로 전시해왔다. 등록 절차와 심사 과정이 까다롭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면 미디어와 아이디엘아트만의 온라인 마케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술팬들에게는 유명 화가들의 고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트피도(ArtFido)는 호주 멜버른 출신의 화가 후안 가르시아가 2012년 시작한 사이트로 가장 많은 수의 잠정적 구매자를 보유한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한다. 아트피도가 화가들을 위한 최고의 온라인 갤러리로 평가받는 이유다. 독립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이 사이트는 작품을 등록하는 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될 경우 1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픽셀(Pixels)은 10만 명 이상 작가, 천만 개의 이미지를 판매하는 사진 전문 온라인 아트 갤러리. 추상과 풍경, 정물과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망라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이 가격을 설정하고 여러 가지 통화로 판매할 수 있으며 작가에게 판매액 전액이 지급된다.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예술애호 온라인 온라인 갤러리들 온라인 플랫폼 온라인 아트

2023-11-19

[전시회 리뷰] MOCA, LA 현대미술전 개최

‘영원한 포스트모던 시티’ LA에 현대미술 전용 박물관 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가 들어선 건 1978년의 일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떠나 거리와 공공장소로 그들의 활동 영역으로 넓혀 나가고 있었다. 1986년 MOCA는 그랜드 애비뉴로 박물관을 확장 이전한다. 그리고 1983년 가을, 새로운 박물관 건물이 건축되고 있는 동안 ‘템포러리 컨템포러리(Temporary Contemporary)’라는 임시 전시 공간을 열어 LA 현대미술의 중심축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간다.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던 1970년대와 80년대는 색다른 맥락과 사조들이 예술가들을 자극하고 있던 시기였다. LA의 미술 현장도 도시의 확장과 분산에 적응해 갔다. 미술과 행위가 만나는 전위 미술이 활발하게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추상과 초현실주의 조형미술이 도시의 공간을 채워 나갔다.     LA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새로운 중심지로 발전해 나가는 동안 MOCA도 세계적 수준의 현대미술관으로 성장해 갔다.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과 견줄만한 작품들이 MOCA에서도 전시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피클과 올리브를 곁들인 햄버거’, ‘흰색 운동화’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LA의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LA는 이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예술 도시 중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실험 정신이 부각되는 작품들이 다수 발표됐다.     LA의 독특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은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된 LA만의 정체성을 띄며 다양한 인종과 계층 간의 콜라보가 이루어지면서 진정한 글로벌 도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LA가 페미니즘과 흑인 인권 운동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었던 건 70, 80년대 진보적 예술가들이 앞장섰기 때문이다.   MOCA는 주로 이 시기에 LA에서 발표된 작품들 200점을 모아 현재 ‘예술 세계 지도:1970~80년대 LA(Mapping an Art World: Los Angeles in the 1970s-80s)’라는 타이틀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LA의 현대 미술을 총망라한 기념비적 전시회다.   제임스 웰링이 1977년 촬영한 LA 건물들의 흑백 사진들은 독일 표현주의가 가득한 느와르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시킨다. 1975년 브룩만갤러리에서 열린 심포지엄 ‘도시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의 전단지도 눈에 띈다.     LA의 다원주의는 지역적 특성이 없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도시가 지닌 국제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단지 내용을 살펴보면 LA의 예술가들은 이미 50년 전, 이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현대미술전 개최 현대미술 전용 진보적 예술가들 la 현대미술

2023-10-22

[전시회 리뷰] 중동 여성화가들의 특별전

 근본주의가 대세인 이슬람 국가들의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말 못하는 계층이었다.     제 3세계의 페미니즘이 지구촌의 이슈로 떠오른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슬람 교리가 여성의 인권을 오히려 더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지난 24일까지 열렸던 이슬람 여성 작가 42명이 참여하는 특별전 ‘Women Defining Women’은 말 못하는 여성들의 눈에 비친 이슬람 국가들의 페미니즘을 깊이 있게 관찰할 좋은 기회였다. 아프리카에서부터 동남아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서 예술로 삶을 표현해온 여성 작가들의 컬렉션 72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들의 내러티브와 시각은 다양하다. 이슬람권 여성 작가들은 각자의 고유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종종 강렬한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들이 방문객들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전시회에 담긴 그들의 생각들은 중동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여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깊고 폭넓은 세계관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여성의 순응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의 가부장적 제도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삶에 연민하게 된다.       이란 출신의 샤디 가디리안은 ‘비 컬러풀(Be Colourful)’시리즈를 통해 현대 이란의 제도권 안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표현한다. 카자흐스탄의 사진작가 알마굴 멘리바예바는 군복을 입은 여인의 맨가슴이 부분적으로 노출된 사진 ‘국토경비대(Land Guard)’를 통해 여성들의 억압과 저항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라크 출신의 헤이브 카라만은 ‘수색(Search)’을 통해 정화와 치유를, 라일라 샤와는 조각 작품으로 여성 위에 군림하려는 남성의 지배의식을 표현한다.     그들은 애써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들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은 그녀들이고 ‘무지’인 것은 우리다. 예술은 이념을 앞선다. 예술은 성차별을 강하게 거부한다. 이슬람권 여성 작가들이 전시회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다. 여성인권을 종교로 왜곡하지 말지어다. 신이 전하고픈 메시지일 것이다.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여성화가 특별전 중동 여성화가들 이슬람권 여성 이슬람 여성

2023-09-24

[전시회 리뷰] ‘흙의 피카소’ 도예가 피터 불코스

도예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이다. 도자기는 변하지 않고 따뜻하며 정직하고 순수하다. 흙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을 포용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일게다.   전세계 도예인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흙의 피카소’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는 현대 미술의 잭슨 폴록과도 같은 존재다.     50년대 그의 분출하는 예술적 영감이 미국의 도예를 오늘날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불코스는 실용기물로서의 도자기에서 벗어나 흙을 순수 예술의 매개체로 삼고 인간 내면의 다양한 욕구와 갈망을 표현한 ‘미서부 흙의 혁명’을 주도한다.     그가 사용한 추상적 표현들은 아프리카 미술과 히피문화, LA의 자유분방한 환경과 더불어 흙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사이에 위치한 ‘분청사기’는 일면 불코스의 혁명 정신과 맞닿아 있다. 청자의 우아함과는 다른 표현 양식이 개발됐고 보다 인간적인 질감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분청사기는 우리 선조들의 자유 정신을 담고 있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서부에서 일었던 흙의 혁명과 분청사기는 자유함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인 공통점이 있다. 지금 이 두 가지 사조의 도예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도자기 그룹전 ‘제너레이션스 오브 클레이(Generations of Clay)’가 마침 풀러턴 머켄탤러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다.     불코스와 그의 1대, 2대, 3대 제자들 18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다. 한국과 미국 역사의 어느 한순간, 도공들에 의해 던져진 자유로움의 순간들과 만나는 시간이다.   전시회를 주관한 김영신 도예가는 불코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 중 3대 제자 군에 속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분청사기 6점이 전시된다. 김영신 작가는 한국 도자기의 전통의 틀 안에서 불코스가 주도했던 현대 도자기의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도예가다.     그의 작품에는 고뇌와 고통과 고독의 체취들이 느껴진다. 이민 초창기의 혼란과 상실의 시간이 그의 작품 세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한국적인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불코스를 만나게 되었고 서구의 현대적 감각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따뜻한 생명력과 포용력이 흙의 본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도예는 흙에 인간을 담아 빚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흙이 하나의 도자기로 완성되는 과정은 작가의 열정과 꿈과 욕망, 존재에 대한 숙고, 삶에 대한 사유들을 담아내는 작업일 것이다.   요즘의 이민문화 현장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단순한 가치이다. 이번 전시회는 고려의 도공들과 서구의 도예가들이 만나는 자리이고, 김영신의 분청사기에 담긴 한국의 혼이 50년대 일었던 미서부에서의 ‘흙의 혁명’과 만나는 자리다. 전시회 한 공간에서 분청사기 6점이 도도하게 뿜어내는 자유함의 내음이 피터 불코스가 일생 추구했던 흙의 실험들과 만나는, 절대 흔하지 않은 전시회다.   김정 영화평론가전시회 리뷰 피카소 불코스 피터 불코스 일면 불코스 김영신 도예가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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